탐인(探人) 정운현의 '역사와의 대화'

(2부에서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줄줄이 사탕’이군요.

  교과부에서 시작된 1급공무원 일괄사표 제출이 국세청, 농식품부, 총리실까지 이어졌습니다. 외교부는 무보직 1급공무원 10여 명에게 사표를 권고했다고 합니다. 모르긴 해도 이같은 추세는 아마 더 이어질 모양입니다. 대통령이 한 마디 하자 정부와 여당이 총공세를 펴고 있는데요, 훅! 하고 불자 휙! 날아가는 형국이네요.

  언론보도에 따르면, 각 부처별로 이번 주부터 사표를 수리하는 절차를 밟을 것이랍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일괄 사표를 냈다고 해서 모두 수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자의 업무수행 실적과 각 부처 사정을 종합해 선별수리하게 될 것”이랍니다. 아마 내년 초에 있을 대규모 개각에 앞서 부처 내 정지작업을 하는 모양입니다. 흔히 새 정부가 출범하면 더러 있어오던 일이긴 합니다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좀 유별나군요.

  직업공무원의 최고봉이랄 수 있는 1급공무원들이 왜 이처럼 힘을 못쓸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들 역시 반(半) 정무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적 격동기에는 늘 명암이 엇갈리기 십상이죠.
즉, 새 정부 출범 초기 인수위 등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은 장, 차관으로 발탁되는가 하면,
그 반대편의 사람들, 즉 과거정부의 사람들은 줄초상이 나는 게 보통이죠.
그래서 이들에겐 이른바 ‘정치 감각’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2, 3급들의 승진길이 되는 것은 물론이구요.

현재 우리나라 공무원 수는 대략 90만 명 가량 되는데요,
이들 중 1급공무원 자리까지 오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행정고시 합격자 중에서도 약 20%만이 1급공무원이 된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아마 육사를 나와서 별을 다는 비율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1급공무원은 능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좋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좁은 문’을 통과한 극소수의 ‘행운아’들이죠. 그런만큼 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취약점도 많습니다. 2급 이하 일반 공무원들이 신분보장을 받는 반면 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1급공무원들이 사표를 내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제 때 승진을 못해 후배들에게 걸림돌로 작용할 때입니다. 1급공무원이 모두 장, 차관으로 승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서는 또 극소수가 정무직으로 발탁됩니다. 그렇게 되면 남은 1급공무원들은 부처 내에서 대개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죠. 이럴 경우 윗사람 눈치도 보이지만, 아랫사람들 눈치도 이만저만한 게 아닙니다. 어쩌면 그들도 선배들에게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이럴 경우 대개 산하기관장으로 나가거나 아니면 옷을 벗는 게 보통인데요, 이는 결국 밀려서 나가는 꼴이죠.

둘째, 소위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한 ‘사의 표명’입니다. 이건 후배들의 승진길을 터주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는 ‘용퇴’와는 다릅니다. 요즘 각 부처에서 마치 도미노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일괄 사의표명'은 자발적인 것이 아닙니다. 다분히 물리적 힘에 따른 반(反)자의적 사표인 것이죠. 이는 주로 요즘처럼 정권 교체기 등에 일어나는 특수한 경우입니다. 장, 차관 등 정무직 공무원을 제외하면 이는 1급공무원들만의 몫인 셈이죠.

그런데, 1급공무원이라고 해서 다 같은 건 아니랍니다.

그건 그들이 옷을 벗고 난 뒤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즉, 어떤 부처의 1급공무원은 퇴직 후 산하단체 기관장이나 임원으로 가서 연봉 몇 억원씩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부처의 1급공무원은 바로 실업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 경제부처의 경우 산하 기관이 많다보니 옷을 벗고도 몇 년(대개 3년)씩 ‘제2의 삶’을 누리는 반면, 대다수 부처의 경우는 그렇지 못합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체어맨 1급’과 ‘지하철 1급’이라고 하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이들이 재직 중에는 막강한 권한을 가집니다.

부처 내 기획조정실장이나 차관보를 맡고 있는 이들은 아래로는 부하 직원들을 통솔하고, 위로는 장, 차관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그런 자리죠. 사실 장, 차관들은 기껏해야 1~2년 정도 있다가 가니까 일반직 공무원들 눈에는 ‘손님’인 셈이죠. 그러나 1급공무원들은 대개 그 부처 내에서 잔뼈가 굵은 데다 일선 업무를 꿰고 있으니 아랫사람들은 장, 차관보다는 1급이 더 무서운 셈이죠. 또 그들의 ‘꿈’이기도 하구요.

해마다 12월이 되면 국회에서는 예결위를 구성합니다. (참고로 예결위는 상임위가 아니라 특별위원회입니다) 예결위는 정부의 내년도 예산을 심사하고, 이를 통과시키는 곳이죠. 심사 과정에서 각 부처의 업무에 대해 묻기도 하구요. 예결위는 일반 상임위 사무실보다 훨씬 규모가 큰 별도의 회의실이 있습니다. 다른 상임위와는 달리 2층에 일반인 방청석도 있구요.

바로 이 예결위가 열리면 국무총리 이하 각 부처 장관, 외청의 청장, 각종 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국회 사무총장, 대법원 행정처장, 선관위와 헌재의 사무총(처)장 등 3부의 책임자들이 전부 출석합니다. 예결위를 들어가 보면 한 해 나라 살림살이의 쓰임새를 살펴볼 수 있고, 또 국정의 전반을 대충 감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이는 3년가량의 짧은 기간이지만 저의 경험에서 나온 판단입니다.

정부의 책임자들이 다 모이는 예결위 회의장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합니다. 국회 청사에는 주민증으로 신분확인만 되면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들어갈 수 있죠. 그러나 예결위 회의장에 들어가려면 사전에 별도의 비표(秘標)를 받아야 됩니다. 국회 예결위 위원들을 비롯해 정부 부처의 기관장이나 부(副)기관장, 그리고 더러 기조실장이나 차관보, 즉 1급공무원이 이들을 대신해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직업공무원으로서는 1급(기관에 따라서는 더러 2급도 있지만)정도라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장, 차관이 갑자기 경질돼 부처 장악이 안 될 경우 대개 1급공무원을 차관으로 승진시켜 부처를 확실히 장악토록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럴 경우 그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커지기 마련이죠. 현 이명박 정부의 차관 가운데도 1급 출신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는 정권 출범 초기 업무를 파악하고 부처를 장악하기 위한 포석인 셈이죠. 그러나 이들은 그같은 목표가 달성되면 대개 옷을 벗어야 하는 것이 보통이죠. 그래서 1급은 임명되는 그 날부터 퇴임일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상으로 ‘1급공무원’ 연재를 마칩니다)

    Posted by 정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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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평소 잘 알지 못했던 고위공무원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 정운현 2008/12/24 17:52

      딱딱하고 어려운 내용이어서인지 댓글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네요^^^

      제 짧은 지식과 경험이지만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2. 비밀댓글입니다

    • 그러잖아도 오실 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그날 더 바쁜 일정이 있으셨나보군요.
      매사에 열심히 사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연말연시에 마무리도, 출발도 잘 하시길...
      일부러 댓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3. ^^ 예약포스팅의 힘이지요.ㅎ

  4. 국방부 사람들과의 모임은 참으로 유쾌하고 즐거웟습니다

  5. 국방부 사람들과의 모임은 참으로 유쾌하고 즐거웟습니다


  6. 그건 그들이 옷을 벗고 난 뒤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즉, 어떤 부처의 1급공무원은 퇴직 후 산하단체 기관장이나 임원으로 가서 연봉 몇 억원씩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부처의 1급공무원은 바로 실업자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개 경제부처의 경우 산하 기관이 많다보니 옷을 벗고도 몇 년(대개 3년)씩 ‘제2의 삶’을 누리는 반면, 대다수 부처의 경우는 그렇지 못합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체어맨 1급’과 ‘지하철 1급’이라고 하기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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