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반기문 UN사무총장이 부임 후 처음 공식적으로 고국 땅을 밟았다. 반 총장은 모처럼 고향인 충북 음성에서 선영도 참배하고 이러저런 공식행사장에도 얼굴을 내비쳤다. 한 마디로 말해 금의환향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국내 언론들도 하나같이 따뜻한 시선으로 반 총장을 맞았다.
반 총장이 한국 외교부장관에서 UN 사무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그를 주제로 한 책이 몇 나온 것으로 안다. 엊그제는 인터넷에서 뭘 찾다가 우연히 ‘반 총장의 인간관계, 반 총장의 자기계발, 반 총장의 성공습관’ 등의 내용을 접하게 됐다. 내용을 검색해보니 이는 <워렌 버핏처럼 부자 되고, 반기문처럼 성공하라>라는 책에 실린 것이었다. ‘반 총장의 성공습관’ 항목에는 ‘자기를 낮추는 지혜를 배워라’가 제일 첫 번째로 올라와 있었다.
혹자는 반 총장이 ‘적이 없는 인물’이라는 중평을 두고 줏대가 없다느니, 소신이 없다느니 하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을 봤다. 그럴 수도 있다. 특히 요즘처럼 민감한 사안이 많고 이념, 지역, 계층 등의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적을 만들지 않고 산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니 '배알이 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서야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지적과는 별개로 반 총장은 인간적 측면에선 참 따뜻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그와 함께 생활을 해본 사람들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평가로 들었다. 점잖으면서도 수더분한 이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탈한 그의 언행 때문인 것 같다. 반 총장과 같은 직장에 근무한 적도 없고 해서 내가 그의 진면목을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 두번의 만남을 통해 나도 그의 그런 면모를 경험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난 2004년 9월 당시 반기문 외교부 장관을 인터뷰하고 있는 필자
지난 2004년 9월, 당시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으로 재직하던 나는 당시 반기문 외교부장관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세종로 외교부 청사 장관실에서 두어 시간, 꽤 긴 인터뷰를 한 기억이 난다. 당시 중국의 '동북공정'과 달라이 라마 방한문제, 경색된 남북관계, 6자회담 전망, 용산기지 이전비용 등 외교 현안이 많아서 시간이 많이 걸렸던 모양이다. 이날 인터뷰에서 특히 기억나는 것은 반 장관이 외교부에 복수차관제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해서 이를 박스기사로 별도처리를 했던 기억도 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7934)
인터뷰 기사가 나간 지 2, 3일이 지나서 외교부 장관실에서 연락이 왔다. 시간이 되면 장관이 저녁을 한번 사겠다는 것이었다. 기사에 대한 반응도 듣고, 식사자리와 같은 사석에서 정보도 얻을 겸 해서 후배 두어 명을 데리고 나갔다. 약속장소는 종로경찰서 맞은편(옛 참여연대 건물 뒤편) 어느 한식집이었다. 그곳은 이른바 고관대작들이 자주 이용한다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그런 유명한 요정 같은 곳이 아니라. 일반 식당보다는 조금 수준이 나은 그런 정도의 집이었다. 주인이 일행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반 장관의 단골집 같았다.
더러 딴에는 대접을 한답시고 손님을 삐까뻔쩍한 집으로 안내하면 부담스러워 밥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는 법이다. 그런데 이날 우리가 초대받은 식사장소는 그런대로 편안했다. 우리 일행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초대자의 배려가 엿보였다. 그날 모임의 대화내용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체로 즐겁고 유익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반 장관은 기사에서 복수차관제를 별도로 언급해준 점을 고마워했던 것 같다.
(* 참고로 ‘복수차관제’는 그 얼마 후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제도적으로 도입됐다. 그래서 현재 외교통상부, 행정안전부, 문화부 등 일부 정부부처에서는 제1차관, 제2차관 등 2명의 차관을 두고 있다)
내가 반 장관을 다시 떠올린 것은 그해 연말 그로부터 연하장을 받고서였다. 인터뷰 한번 했다고 명색이 장관급 인사가 일일이 연하장을 챙기는 것도 드문 일이거니와 내용도 다른 연하장과는 좀 달랐었다. 연하장의 경우 대개 겉봉에는 보내는 사람의 이름만 있는 것이 보통인데, 반 장관 연하장은 ‘외교통상부장관 반기문 내외’라고 돼 있었다. 또 속에 있는 연하장에는 인쇄된 인사말 아래 ‘불초 반기문 올림’이라고 자필 서명을 하고는 여기서도 ‘외교통상부장관 반기문 내외 배상’이라며 ‘내외’를 다시 언급했다. (이번에 반 총장의 충북 음성 고향방문 기사를 보니 부인은 ‘고향의 친구’라고 소개돼 있었다) 이같은 양식은 2005년에 내가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고 난 후에 새 주소로 온 연하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차이점은 ‘불초 반기문 올림’이 한자로 바뀐 정도였다.
2004년 그해 연말 반기문 장관이 보내온 연하장 겉봉. 좌측 상단에 '외교통상부장관 반기문 내외'라는 문귀가 보인다. 2004년(위), 2005년 연말에 반 장관이 보내온 연하장. 서명란에 '불초 반기문 올림(배상)' 이라는 문귀가 보인다. 반 장관은 평소 겸손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불초(不肖)’라는 말은 <맹자>에 나오는 말로, ‘(부모를) 닮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 유래는 요.순 임금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이 말은 자기를 낮추는 의미로 쓰이거나 또는 원래 의미의 ‘불효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반 총장이 연하장에서 사용한 ‘불초’는 더러 편짓글에서 쓰이는 ‘불초 소생’처럼 자신을 낮춰 부른, 즉 겸양어인 셈이다. 언젠가 지인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줬더니 그는 ‘자신을 낮춰서 손해볼 것 없다’며 반 장관의 처신을 찬동하고 나섰다. ‘겸양’은 고금을 통털어 여전히 유효한 미덕인 모양이다.
얼마전 신문에서 세계의 지도자 가운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물 1위로 반 총장이 꼽힌 걸 보고 기분이 좋았다. 오늘 신문에서 반 총장이 G8정상회의에서 후진타오 주석 등과 같이 서있는 사진을 보고서도 기분이 좋았다. UN 사무총장 그 자리에 반 총장 대신 다른 나라 사람이 앉았다고 가정해본다면 내가 기분 좋은 이유가 설명될 것이다.
오랜 행정 경험과 외교관으로서의 경륜, 그리고 후덕하고 포용력 있는 성품을 갖춘 반 총장이 인류 전체에게 오래 기억될 큰 업적을 남기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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