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이지는 않지만 두어 달에 한번 꼴로 만나는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께서 입원해 계시던 서울백병원 1005호실 입구(출처-민중의 소리, 2010. 4. 13) 작년 가을 리영희 선생 댁 거실에서(왼쪽부터 필자, 김삼웅 전 관장, 리 선생 부부, 김희선 전 의원) 작년 가을, 건강한 모습의 리영희 선생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김희선 전 의원을 꼽을 수 있습니다.
김 전 관장님과는 80년대 후반에 만났으니 어언 20년이 넘은 사이입니다.
김 전 의원님과도 거지반 그 정도 교류를 쌓아온 오래된 인연입니다.
두 분과 저와의 공통된 관심사는 ‘친일청산’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데요,
김 전 관장님과는 같이 책도 내고 활동도 하면서 동학(同學)의 길을 걸어왔고,
김 전 의원님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제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신 분이죠.
(* 참고로 저는 친일진상규명위원회에서 사무처장을, 김 전 관장님은 위원을 지냈습니다)
며칠 전 광화문 인근 중국집에서 세 사람이 만나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뭐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얘기 등을 나누는 게 보통입니다.
대화중에 우연히 리영희 선생님께서 입원해 계신다는 얘기가 나오게 되었는데,
김 전 의원께서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며 식사 후 문병을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은 서둘러 점심을 먹고 충무로 백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선생이 입원해 계시던 10층 병실로 갔더니 다른 사람 이름이 붙어 있더군요.
그래서 간호사에게 물어보았더니 선생께서 얼마 전에 퇴원을 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리저리 수소문해보았더니 선생께서는 아드님 댁에 머물고 계시답니다.
우리 세 사람은 작년 가을 리영희 선생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중풍 후유증이 조금 있긴 했습니다만, 그런대로 건강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식사를 하러 나가면서 선생께서 운전하신 차를 얻어 타기도 했죠.
(* 관련기사 : 리영희 선생이 운전하신 차를 얻어 탔습니다)
그런데 최근 선생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병원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
병문안을 다녀온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고들 했습니다.
병명은 간경화인데, 심할 때는 거의 매일 복수를 빼내야 한다고 합니다.
올해 81세시니 자연연령으로는 천수를 다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아직은 선생께서 우리 곁에 더 계셔 주셔야 한다고 많은 이들은 생각합니다.
작년 가을, 우리 세 사람이 선생 댁으로 찾아 갔을 때의 얘깁니다.
김삼웅 전 관장께서는 그 때 선생의 평전을 쓰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는데요,
약속대로 김 전 관장은 현재 자신의 블로그에 <리영희 평전>을 연재중입니다.
(* 리영희 평전 : http://blog.ohmynews.com/kimsamwoong/)
금년 4월 19일부터 시작하여, 10일 현재 82회가 연재되고 있군요.
문학평론가 임헌영 선생이 리 선생을 대담하여 엮은 <대화>를 저도 읽었습니다만,
이번 <리영희 평전>을 통해 선생의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된 것이 적지 않습니다.
그 엄혹했던 시절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살아오신 선생의 삶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우리가 이런 분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게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김 전 관장과 리 선생은 과거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교분을 쌓아온 사이로 압니다.
연배로는 김 전 관장(67세)이 14세 연하입니다만, 나이의 문제가 아닙니다.
김 전 관장께서는 리 선생을 진실로 스승처럼 존경해 왔습니다.
오죽하면 신문에 리영희 선생의 ‘생제문(生祭文)’을 다 쓰셨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제문(祭文)’이란 원래 죽은 사람을 두고 쓰는 글인데요,
김 전 관장께서는 지난 2006년 생존해 있는 리영희 선생을 두고 생제문을 썼습니다.
(* 관련글 : [시론] 리영희 생제문(生祭文) )
산 사람을 두고 제문을 썼으니 동서고금을 통털어 봐도 드물고 특별한 일이지요.
당시 김 전 관장이 ‘리영희 생제문’을 쓴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 무렵 선생께서 “정신적·육체적 기능이 저하돼 지적 활동을 마감하려니 많은 생각이 든다”며
‘지적 활동’의 마감을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글과 말로 시대의 풍향계 역할을 해오신 선생이 ‘지적 활동’의 마감을 선언하셨으니
이는 지식인 리영희의 ‘정신적 죽음’을 의미한다고 김 전 관장은 보신 게지요.
독자 여러분! 김 전 관장이 쓰신 ‘리영희 생제문’을 찬찬히 한번 읽어보십시오.
리 선생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넘치면서도 허투른 구절은 어디에도 제 눈엔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을 한 치의 부족함도, 부적절함도 없이 그려낸 ‘명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 전 관장은 ‘생제문’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맺습니다.
“리영희 선생님, 더디 더디 늙으소서.”
그러나 그 선생은 벌써 올해로 81세시며, 지금 병석에 계십니다.
태어난 생명은 언젠가는 다 생을 마치게 마련입니다.
부처도 죽었고, 예수도 죽었고, 진시황도 죽었습니다.
리영희 선생도 당연히 예외는 아닙니다.
일전에 들으니 선생은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시키는 행위에 대해선 부정적이시더군요.
만약 자신에게 그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사람답게 살다가 죽고 싶습니다’고 하셨습니다.
또 돌아가시기 전에 유서도 미리 써놓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다 보고 가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선생 정도의 연세가 되신 분들이라면 흔히 그런 생각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지로 그렇게 실천하시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어제(9일) 타계하신 언론학자 이상희 선생님의 부음소식을 오늘 접하면서,
문득 병석에 계신 리영희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선생께서 꼭 털고 일어나시길 기원합니다.
부디, 더디 더디 돌아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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