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가만히 놔두면 어쩌면 마주 달리는 열차가 충돌하는 형국이 될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은 이제 사라졌다고도 하지만 꼭 총성이 오가야만 전쟁은 아니다. 개성관광 등 대북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현대아산으로선 사운이 걸린 판국이다. 한마디로 걱정이다.
보도에 따르면, 어제(24일) 북한당국은 다음달 1일부터 남북관계에 치명적인 조치를 남측에 통보해 왔다. 구체적으로는 개성관광 및 협력사업과 관련한 남측 인사의 방북 및 남북 철도운행 중단, 그리고 개성공단 내 남측 상주 인원 감축 등이다. 사실상 남북관계 전면 중단을 밝힌 셈이나 마찬가지다.
6.15선언 이전 상황으로 후퇴한 남북관계
북측의 이번 조치가 시행될 경우 내달부터 개성공단 사업을 제외한 남북간의 모든 교류협력 사업들이 사실상 중단된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측 사업자들의 경제적 손실은 차치하고라도 남북관계에 한바탕 격랑이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남북관계가 최악 직전인 지금의 상황을 두고 혹자는 2000년 6·15 선언 채택 이전의 상태로 후퇴했다고 평가하였다.
남북을 잇는 서울~개성간 육로. 이 실핏줄 하나라도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비단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북측도 경제적 손실이 적지 않겠지만, 남측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남북경협시민연대 김규철 대표는 24일 ‘개성공단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이 폐쇄되면 남한은 최소 5000억원 이상의 투자손실 외에도 현재 건축중인 공장 완공시 발생할 2조4900억원 가량의 경제적 효과도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남북한은 당장 통일은 할 수 없을지라도 서로의 현 체제를 인정하고 상호 협력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자는 대명제에 합의한 바 있다. 두 차례 걸친 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을 통해 이같은 합의를 도출한 이상 양측은 신의성실의 의무가 있다. 그런 전제에서 볼 때 이번 북측의 강경조치는 남측의 불성실에서 기인한 바 적지 않다.
우선 이명박 정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북측과 합의한 공동선언을 마치 헌신짝처럼 여겨왔다는 지적을 북측은 물론 남측 내부에서조차 받아 왔다. 이명박 정부는 마치 이전 두 정권의 대북정책을 정반대로 추진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결론내린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악재는 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법이다. 이번 북측의 강경대응을 촉발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최근 잇따른 우익단체들의 대북 삐라 살포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북한체제를 비방하는 내용의 삐라 살포는 북측을 자극하여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분석이 전문가들과 언론보도에서 이미 지적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이를 적극 단속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수방관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마저 사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잇따르는 악재들
게다가 지난 22일 유엔에서 통과된 ‘대북 인권결의안’도 북한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는 분석이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이 주도한 이번 대북 인권결의안에는 51개국이 공동제안국으로 나섰는데, 우리나라도 이번에 처음으로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참여 그 자체를 놓고 따지기보다는 시기적으로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만 하다고 하겠다.
게다가 이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도 한 몫을 했다고 한다. 며칠 전 이 대통령은 방미 중 워싱턴 기자간담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통일하는 것이 최후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북한 조평통은 22일 "(남측이) 북침 전쟁을 최후 목표로 인식하고 있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보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의 행동을 한 셈이다.
미국은 최근 대선에서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가 당선됐다. 오바마 진영은 대북정책에서 부시정부와는 다른 행보를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오바마-김정일 회담조차 서슴지 않고 거론하고 있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미국 민주당은 전통적인 대북문제에 적극 행동으로 나서온 전통이 있다. 카터 대통령은 퇴임 후이긴 하나 직접 방북했으며, 또 클린턴 정권 때는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방북하기도 했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김정일 회담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반대한다고 해서 두 사람의 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런 이 대통령의 발언은 그가 남북문제에 키를 잡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이 남북문제 협상테이블에서 배제된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고 하겠다.
24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이날 APEC 정상회의를 마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동하는 대통령특별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을 상대하는 데 ‘통미봉남’이라는 용어는 이제 폐기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국의 버락 오바마 신정부가 직접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든, 또 어떤 조치를 취하든 한국과 사전에 충분한 교류와 합의하에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이 역시 이 대통령의 ‘희망사항’일 수도 있다.
오바마-김정일 회담, 성사 가능성도
역대 정권에서 남북문제가 그나마 우리 수중에서 논의됐던 적은 이전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 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이 두 정권이 다진 남북관계의 기틀을 무조건 내치지만 말고 적극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정권 차원의 문제, 이명박 대통령 개인의 자존심 문제가 아니라 민족 차원의 거시적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에게 제안을 하나 한다면, 파국 위기의 남북관계를 정상화 시키기 위해 특사 파견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남북한이 살고 이명박 정권도 사는 길이다. 특사 파견은 이러저런 전제조건을 붙이면 성사되기 어렵다. 시기나 적임자를 과도하게 저울질하다가는 시기를 놓칠 수 있다. 모든 걸 열어놓고, 또 앞뒤 가리지 말고 극약처방을 하듯 추진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엔 특사로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적임자로 보인다. 두 분 가운데 굳이 한 사람을 선택한다면 현 시점에선 노 전 대통령이 더 적절해 보인다. 지난 정권과 각을 세우고 있는 이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제안을 선뜻 수용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체면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고 사는 문제가 바로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7년 10월 2일 남북정상회담차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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