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5월 25일 국정원과거사진실위원회는 ‘김형욱 실종사건’에 대한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사건의 유력한 배후인물로 이상열(당시 76세) 전 주불대사관 공사를 거론했다. 진실위는 그러면서 이 전 공사에 대해 3차례 면담조사를 벌였으나 이 전 공사가 사건 개입사실은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관련내용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 공사는 어떤 인물이며, 그가 이 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상열 전 주불 공사
진실위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1979년 당시 중정의 프랑스 책임자였던 이 전 공사가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지시를 받고 중정 연수생들을 시켜 김형욱을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했다고 발표했다.
사건 발생 직후 프랑스 경찰은 수사본부를 차려 이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 전 공사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조사를 벌였다. 당시 파리 현지에서 이 사건을 직접 취재한 주섭일 씨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을 들어보자.
“까르타 수사본부장(당시 파리경시청 형사부장)이 ‘깜짝 놀랄만한 한국 고위 외교관’을 소환해 조사했으며, 조사내용은 김형욱 사건의 방향을 설정하고 참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이 외교관은 이상열 공사였다. 당초 수사본부는 이 공사를 두 차례 조사할 계획이었는데 본격적인 조사를 앞두고 이 공사가 서울로 가는 바람에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중략) 어쨌든 당시 수사본부는 이 공사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한 것으로 봐야 한다. 사건 발생 2주 후 경시청을 찾았다가 김형욱 부인 등 가족을 만났는데 그들도 ‘이상열 공사에게 물어봐라, 다 알 것이다’고 하더라. 김형욱 부인도 수사본부에 이 공사를 지목했던 것 같다.”
김형욱이 미국에서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회고록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당시 중정은 김형욱과의 교섭창구로 이 전 공사를 내세웠다. 군 출신인 이 전 공사는 1963년 이른바 ‘원충연 대령 반혁명사건’ 처리과정에서 김형욱 씨와 인연을 맺어 중앙정보부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욱이 중정부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이 전 공사는 김형욱의 심복 중 한 사람이었으며, 김형욱이 뉴욕에서 파리로 올 때마다 수행하면서 안내를 맡기도 했다.
주섭일 씨는 사건 발생 10일 후 모 일간지 특파원과 이 전 공사를 만났다. 이 전 공사는 사건 전날 밤 12시까지 김형욱과 함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 전 공사는 당시 김형욱이 술과 음식이 공짜인 도박장에서 술을 과음하여 주정을 한 사실까지 들려줬다. 이 전 공사는 도박장 종업원이 술에 만취한 김형욱을 수습하는 것을 보고 귀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대목이 의심스럽다. 김형욱이 과거 자신을 믿고 챙겨준 상사인데다 당시 만취한 상태였는데, 도박장 종업원이 그를 수습하는 것을 보고 그냥 귀가했을까 하는 점이다. 김형욱이 실종된 것은 이 전 공사와 헤어진 바로 그 다음날이다.
이 대목에서 국정원진실위의 발표 한 대목이 떠오른다.
“1979년 10월 7일, 김형욱은 파리 시내 리도극장 근처에서 파리주재 한국대사관의 이상열 공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리 카지노에서 돈을 잃은 김형욱은 중정 부장시절 부하로 있던 이 공사에게 돈을 꿔달라고 부탁했고, 김형욱은 그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얼마 후 관용차 푸조604를 타고 도착한 이 공사는 “돈을 빌려줄 사람을 데려왔다”며 김형욱을 옆 조수석에 태웠다. 당시 이 차에는 유럽인 2명이 뒷좌석에 타고 있었고, 이 공사의 한국인 부하라는 신현진(가명)도 타고 있었다.
차가 시내를 벗어나 외곽순환도로를 건널 무렵 뒷좌석에 탔던 유럽인이 김형욱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쳤고, 김형욱은 이내 쓰러졌다. 차가 외곽으로 완전히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하자 유럽인 2명은 실신한 김형욱을 끌고 숲속으로 사라졌는데, 잠시 후 일곱 번의 총소리가 들렸다. 유럽인들은 김형욱의 바바리코트, 시계, 여권, 지갑 등을 챙긴 뒤 주변의 낙엽으로 그의 시체를 처리했다. 이들은 시내로 들어와 중정 연수생 이만수(가명)로부터 10만 달러가 든 가방을 전달받았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전 공사는 국정원진실위의 3차례 면담조사에서 사건 개입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이 전 공사는 조사과정에서 “‘노(NO)’라고 했다고 기록해 달라”며 입을 다물었다고 전해진다.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이 전 공사의 태도 등 여러 정황으로 봐 그가 이 사건에 개입됐을 정황은 아주 높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초반 중앙정보부에 발을 들여놓은 이 전 공사는 1970년부터는 주로 해외공관에서 근무하다가 10.26 사건 이후 국내로 들어와 미얀마, 리비아 대사를 거쳐 1994년 이란 대사를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했다. 그간 언론의 무수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보기관 출신은 비밀을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며 끝까지 이 사건의 진실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은 채 2006년 4월 3일 지병인 폐렴으로 사망했다.
결국 핵심인물인 이 전 공사의 사망으로 이 사건은 영구미제사건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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